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딴짓/어학연수

정조대왕의 꿈, 화성 행궁

by 바른생활머시마 2023. 5.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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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 행사 일정 중 화성 행궁을 둘러보는 시간이 있었습니다. 예전에 야간에 음악회 할 때 한번 가본 적이 있는데 이렇게 본격적으로 둘러보는 것은 처음이었습니다. 

 

수원 장안문과 팔달문 사이에 있습니다.

 

수원광광 정보 홈페이지에서 화성 행궁과 각 건물의 유래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볼 수 있습니다.

https://www.suwon.go.kr/web/visitsuwon/hs02/pages.do

 

수원관광

수원관광

www.suwon.go.kr:443

 

궁궐 건물 외 성벽도 가까이 있고, 성벽을 포함해서 둘러 볼 수 있는 관광코스도 있네요.

https://www.suwon.go.kr/web/visitsuwon/hs02/pages.do?seqNo=55 

 

수원관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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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ww.suwon.go.kr:443

는데, 저희는 아무런 준비를 하지 않고 가서 궁궐 내부만 둘러보았습니다.

 

운 좋게도, 가장 마지막 해설가 설명을 들을 수 있는 시간(15:30)과 가까워 정말 좋은 설명을 들으며 둘러 볼 수 있었습니다.

저희가 둘러 본 코스는 신풍루를 지나 봉수당, 노래당, 낙남헌, 득중정을 거쳐 뒤쪽의 행차 의궤 사본을 본 후 대장금 촬영 장소를 통해 유여택까지 둘어보았습니다.

 

입구인 '신풍루'의 모습입니다.

나중에 들은 설명이지만 오른쪽 문으로 들어가서 왼쪽 문으로 나온다고 합니다. 가운데 길은 임금님 길이겠죠?? 예전에 종묘에 갔을 때도, 길 가운데로 솟아나 있는 길은 임금님의 영혼이 다니는 길이라고 들었던 기억이 났었습니다. '정조' 임금님은 그런 존경의 대접을 받을만 하신 분이죠.

신풍문

입구를 들어서면 오른쪽에 작은 안내소와 해설가분들 대기실이 있습니다. 저희를 안내 해 주신 분은 매우 재미도 있으시면서 또 정조 임금님의 마음에 여전히 계속 감동을 받으시는지 설명 중에 감정이 북받치시는 듯한, 열정이 있으신 분이셨습니다.

 

 

신풍루를 지나 '좌익문' 앞에서 첫번째 설명을 하셨는데, '좌익문'의 '좌'가 '좌의정'의 '좌'와 같은 의미라고 하셨습니다. 즉, 임금님을 바로 옆에서 돕는. 우의정 보다 높은 좌의정~ 

 

신풍루는 요즘으로 치면, 세종시 같은 느낌의 의미를 담고 있다고 하셨습니다. '풍'자가 중국 고대 역사 인물(누구였더라..한나라 유방??)의 고향이라서 '풍'이라는 글자가 고향의 의미로 쓰였고, 여기에 새로운 고향을 만들고자 한 뜻을 담고 있다고 합니다. 아버지 사도세자가 이루지 못한 꿈을 자신이 이뤄내겠노라 하며 세운 도시.

좌익문 앞에서 바라 본 신풍루

 

 

그러면서 신풍루를 바라보며 왼쪽으로 보이는 아주 오래 된 나무를 가리키며 놀라운 말씀을 해주셨는데, 원래 저 나무는 죽은 나무인 줄 알았다고 합니다. 2002년 월드컵 때 행궁 복원 공사를 하게 되자, 그 나무에서 다시 잎이 나고 살아났다고 하네요. 고난이 있어도 버텨내면 좋은 날이 꼭 온다는 뜻 같아서, 지금의 어려움을 견딜 수 있는 감동을 주는 것 같았어요. 바로 이런 것이 해설을 들어야 하는 이유이죠.

다시 살아난 고목

 

그 오른쪽을 보면, 궁녀와 관리 의상을 입은 인형이 서 있는데, 딱 봐도 떠오르는 드라마가 있었습니다. '대장금'은 여전히 외국에서 그 인기가 현재 진행형이라고 합니다. 실제로 대장금의 수라간 촬영을 화성행궁에서도 했고, 그 촬영장에 수라 모습을 보여주기 위한 모형들이 조촐하게 전시되어 있습니다. 저 곳은 사진을 찍으면 아주 이쁘게 나온다고 설명 해 주셨는데 그냥 그려려니 했는데 찍어놓고 보니 정말 그럴 것 같아 보이네요.

대장금 기념 사진 촬영 장소

 

이어서 중양문을 지나 봉수당으로 갔습니다. 중양문에 대해서도 무슨 설명을 해주셨는데, 설명을 열심히 듣느라 사진도 못찍었어요. 그런데, 열심히 들은 내용이 또 생각나지 않는 아이러니.ㅋ 기억에 남는 내용으로, 이렇게 문을 세 개 지나서 가장 중요한 건물에 이르는 것이 조선 시대 궁궐 건축의 형식이었다고 합니다. 말씀을 듣고 보니, 경복궁도 광화문 지나서 흥례문, 근정문을 지나 근정전에 갈 수 있었네요.

 

봉수당에서는 어머니 혜경궁 홍씨의 회갑연에 대한 설명을 해주셨고, 그러면서 건물 뒤에 붙는 글자에 대해서 설명 해 주셨습니다. 임금님이 사용하는 건물은 '전'이 붙었고, '당'은 그 보다 아래였다고 합니다. 혜경궁 홍씨가 중전이 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말씀 해 주신 것 같기도 하고..긴가민기... 그러면서 '예술의 전당'의 그 '전당'이, 여기에 나오는 그 '전'과 '당'이 붙은 것이라고 말씀 해 주셨어요.

 

화성행궁 홈페이지에 소개 된 봉수당 사진

한쪽 옆에 있는 철제 물건이 무엇인지 맞춰보라고 하셨습니다. 화로 비슷하게 생긴 금속의 냄비 같은 것인데 길거리에 있는 쓰레기통 모양과 같이 생겼습니다. 다리가 세 개인 것은 천-지-인을 뜻하며, 왕이라는 글자가 이 3가지를 이어 주는 사람이며, 밥솥은 백성들을 먹이는 임금의 중요한 역할을 나타내는 뜻이라고 하네요. 그 옆에는 화마를 쫓는 큰 쇠 물그릇도 보였습니다.

 기록에 남은 그림의 봉수당은 지금보다 훨씬 더 넓어보이는데 복원 하면서 공간이 축소 된 것 아닌가 싶네요.

 

 

 

다음으로 '노래당'으로 갔습니다.

해설가께서 뭔가 느낌이 다르지 않느냐 하셔서 아늑하고 편안한 느낌이라 어머니를 위한 공간인가 싶었는데, 정조 임금님 본인이 상왕이 되었을 때 지내려고 만든 곳이라고 합니다. 그러면서, 태종의 든든한 후원으로 세종의 태평성대가 있었고, 자신이 아버지나 정치적 지지 세력 없이 왕이 되면서 큰 고난을 겪은 것을 생각하여, 다음 왕을 지원하여 좋은 왕이 될 수 있도록 해주려 했다고 합니다. 정조 임금님이 겪은 고난을 생각하면 충분히 그런 생각을 할 만 한 것 같습니다. 

화성행궁 소개 홈페이지의 노래당 사진

그 다음으로 간 곳은 '낙남헌'이었습니다.

소개 홈페이지에도 나와 있지만, 낙양과 같은 수도를 만들고자 한 의지가 담긴 이름이라고 합니다. 많은 행사가 열렸던 곳인데, 해설가 선생님도 이 건물에서 해설가 시험을 보셨다고 합니다.  방문한 이 날, 날씨가 아주 좋았고 그래서 햇볕이 꽤 뜨거웠습니다. 그러나, 여기 낙남헌 마루 앞에는 바람이 매우 시원하게 잘 불었습니다. 

 기둥을 살펴보니 안쪽보다 바깥쪽 면이 더 울퉁불퉁 한 것이, 오랜 세월 비바람을 맞아 닳은 모습 같았고, 통영 세병관에서 보았던 그 기둥들의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낙남헌 소개

 

다음으로 간 곳은 '득중정'입니다. 

입구에서 오래 된 나무를 보고 왔기 때문인지, 득중정 앞에 있는 고목도 신비롭게 느껴졌습니다. 이 곳에서 활쏘기를 하셨다고 하는데, 멀리 보이는 건물 근처의 과녁도 잘 맞추셨다고 합니다. 무예에 재능이 있던 아버지의 유전자에, 어릴 때부터 온갖 위협으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한 단련을 끊임없이 해 왔으니 매우 강한 분이셨을 것이 분명합니다. 

 

이후 건물 뒷편을 돌아 가면서 행차 모습을 그린 의궤를 보면서 설명을 해주셨습니다.

특히, 임금이 있는 자리가 두 군데 있는데 앞쪽의 어가와 뒤쪽의 말을 탄 자리 중 어느 곳에 계셨을까 물어보셨습니다. 정조 임금님은 뒤쪽에 계셨는데, 그 자리는 바로 어머니 혜경궁 홍씨를 바로 뒤에서 볼 수 있는 곳이었다고 합니다. 어머니가 힘드시지 않을지 잘 보살피고자 바로 뒤에서 말을 타고 따라 가셨다고 합니다.  그 뒤로 정조 임금님을 따르던 용맹한 장용영 군인들의 모습도 매우 듬직해 보였습니다. 이 그림은 김홍도의 그림과 비슷해 보이는데 시기 상 김홍도가 그린 것은 아니고 그 제자들이 김홍보의 화풍을 이어 받아 그린 것 같다고 하셨습니다.

 

이 설명을 하시다가, 선생님께서 깜짝 놀라시며 맞은 편에 앵두가 열린 것을 보고 잠시 생각에 잠기 시더니 재미있는 이야기를 해주셨습니다. 문종 임금님이 어릴 때 아버지 세종대왕께서 앵두를 찾으시는 모습을 많이 보셔서 앵두를 좋아하시나보다 생각하셨다고 합니다. 그래서, 직접 세종대왕께 드리려 앵두나무를 심으셨고, 이것을 세종대왕께서 몹시 기뻐하셨다는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점은 세종대왕이 앵두를 매우 좋아했던 것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무엇하나 빠지는 것 없으신 분이시니 효성도 말할 것 없겠죠. 그 세종대왕께서 제사를 지내야 하는데, 딱 요즘 같은 계절에는 과일이 거의 없었다고 하고, 그나마 있는 과일이 앵두였다고 합니다. 그래서, 제사 지낼 과일을 준비하기 위해서 앵두 앵두 하면서 지내셨다고 합니다. 그런 효성을 가진 세종이셨으니, 그 아들 문종 또한 그런 성품을 지니셨던 것 같다고.

 

 정조 임금님 또한 사도세자를 많이 닮으셨을 것이니, 영조 임금님이 온전하실 때 왕위를 물려주었다면 그런 비극은 없지 않았을까 싶네요. 영조 임금님도 다 생각이 있으셔서 그렇게 하셨을 것이고, 우리가 드라마를 통해서 본 영조 대왕의 모습이 꼭 실제와 같지 않을 수도 있으니 단정 해서는 안되겠습니다. 그러나, 비극은 비극이라는 점이 많이 안타깝습니다.

 

 

다음으로 '유여택'으로 이동을 했는데, 이동하는 중간에 '대장금'의 수라간 촬영 장소가 나옵니다. 그다지 넓지 않은 작은방 크기인데 카메라 앵글을 어떻게 잘 잡았는지 그 공간에서도 번잡하고 바쁜 수라간 모습을 잘 촬영했었네요. 그 장소는 여전히 외국인들에게 인기가 높은 장소라고 합니다.

 

유여택 앞 넓은 마당에 이르면 오른쪽에 여러 개의 뒤주 모형이 있습니다. 관람자들이 지정 된 시간에 뒤주에 같히는 체험을 해 볼 수 있는 시설인데요, 해설 선생님도 여기 설명을 하시면서 마음이 많이 아프신 것 같았습니다. 스스로 죽으라고 칼을 내린 아버지에 대한 심정이 어땠을지, 자신이 죽게 되면 남은 아내와 자식에 대한 걱정이 얼마나 컸을지, 뒤주 속에서도 행여나 살려주지 않을까 기대하다가 끝내 목숨이 다 할때 어떤 마음이었을지... 우리는 감히 상상 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화성행궁 건물만 둘러보자면 그냥 슥 둘러보면 10분이면 충분하지만, 실제로는 아무것도 보지 못한 것과 같을 것입니다. 어느 관광지를 가더라도 꼭 해설 선생님의 설명응 듣는 것이 좋은 것 같습니다.

 

이런 조상님들 후손으로, 어찌 욱일기 달고 일본 전함이 부산에 입항한다는데도 관례라는 얼빠진 소리나 하는 놈들이 나왔는지 모르겠네요. 

https://imnews.imbc.com/replay/2023/nwdesk/article/6487496_36199.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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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news.imbc.com

정조임금님께서 좀 더 오래 사셨다면,

조선 말기 외척들이 난리치면서 뿌린 악의 씨앗이 자리를 잡지 못해서, 매국노들이 덜 생기지 않았을까 아쉬운 상상을 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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